평지에서 잘 달리는 사람이, 급경사 오르막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유
2026. 09. 09. 08:34 · 트레일러너들 팁

평지나 완만한 언덕에서는 페이스도 잘 나오고 숨도 편한데, 경사가 확 가팔라지는 구간만 만나면 유독 무너지는 러너들이 있다. 반대로 평소엔 크게 빨라 보이지 않던 사람이 급경사 구간에서는 오히려 여유 있게 치고 올라가기도 한다. 흔히 이걸 그날의 컨디션이나 단순한 체력 차이로 보고 넘기기 쉽지만, 여기에는 '러닝 경제성'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이 얽혀 있다.
러닝 경제성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을 뜻한다. 같은 페이스로 뛰어도 누군가는 산소를 덜 쓰고, 누군가는 더 많이 쓴다는 뜻이다.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는 이 개념을 설명하며 중요한 단서를 하나 덧붙인다. 경제성은 속도와 방식(지형)에 따라 달라지며, 평지에서 에너지 효율이 좋다고 해서 그 효율이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지 기록이 좋은 사람이 오르막에서도 당연히 유리할 거라는 가정은 생각보다 자주 빗나간다.
이 책의 설명은 최근 연구 결과와도 맞아떨어진다. 2021년 프론티어스 인 피지올로지에 실린 연구는 평지·오르막·내리막 경제성의 상관관계를 완만한 경사부터 급경사까지 구간별로 나누어 살펴봤다. 그 결과 평지와 5~10% 경사 오르막의 경제성은 약한 상관관계(r=0.45~0.81 수준)만을 보였고, 경사가 20% 안팎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 상관관계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 평지에서 아무리 효율적으로 뛰어도, 급경사 구간에서는 전혀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유는 두 다리가 지면에서 에너지를 되돌려받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완만한 경사까지는 평지 러닝처럼 힘줄과 근육이 탄성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되돌려주는 반동 동작의 비중이 커서, 심폐지구력이 좋은 사람이 유리한 구조다. 하지만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지면 이 반동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다리 근육이 체중 전체를 수직으로 밀어 올리는 순수한 근력에 의존하게 된다. 같은 연구에서도 급경사 구간의 에너지 소모는 심폐 능력보다 다리 근력, 특히 대퇴사두근과 종아리 근육의 힘과 더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보고했다.
국내 산악 대회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르다. UTMB 계열 대회나 국내 100마일급 대회 코스 중에는 경사도가 30%에 육박하는 급경사 구간이 꼭 한두 곳씩 포함돼 있다. 로드에서 페이스가 준수했던 러너가 이런 구간에서 유독 페이스가 뚝 떨어지고, 반대로 평소 로드 기록은 평범했던 러너가 같은 구간에서 앞서가는 장면은 대회 후기에서도 흔히 나오는 얘기다. 우연이 아니라 경제성이 지형별로 따로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흥미롭게도 이 상관관계는 선수의 실력 수준에 따라서도 갈렸다. 엘리트 트레일러너 그룹에서는 평지와 오르막 경제성이 비교적 뚜렷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반면, 서브엘리트 그룹에서는 그런 연결이 분명하지 않았다. 오래 훈련된 몸일수록 지형이 바뀌어도 효율을 유지하는 능력 자체가 하나의 훈련된 기술로 자리 잡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대로 말하면, 평지 위주로만 훈련해온 러너일수록 오르막에서 그 격차가 더 크게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이 연구는 참가자 수가 많지 않은 필드 연구였던 만큼, 개인차나 코스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여지는 남아 있다.
실전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비교적 명확하다. 평지 템포런이나 로드 기록만으로 오르막 실력을 가늠하지 말고, 실제 급경사 구간에서 따로 테스트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기초 기간 중 일주일에 한 번 짧게 넣는 힐 스프린트나 힐 바운딩, 무게를 추가한 언덕 반복 훈련처럼 오르막에 특화된 근력 자극이 경제성 자체를 끌어올린다고 강조한다. 8~10초 남짓의 짧은 전력 질주를 완전한 휴식과 함께 반복하는 방식으로, 처음 몇 주는 힘든 느낌조차 없다가 신경계가 빠른 근섬유를 더 많이 동원하는 법을 익히면서 보폭과 경제성이 함께 좋아진다.
다음 훈련 계획을 짤 때는 평지 페이스 하나만 기준으로 삼기보다, 자주 오르는 급경사 구간의 소요 시간이나 심박수 반응을 따로 기록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두 수치가 따로 노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어느 쪽을 더 훈련해야 하는지가 훨씬 분명해진다.
참고: Steve House·Kilian Jornet·Scott Johnston,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
참고: "Level, Uphill, and Downhill Running Economy Values Are Correlated Except on Steep Slopes", Frontiers in Physiology,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physiology/articles/10.3389/fphys.2021.697315/full
원문 : Steve House·Kilian Jornet·Scott Johnston,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
기존 사이트 게시글 : https://trailrunners.kr/tip/?bmode=view&idx=173910093&t=boa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