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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 팁

머리를 90분 쓰고 나면, 다리는 멀쩡해도 15% 빨리 지친다

2026. 10. 20. 08:07 · 트레일러너들 팁


퇴근 후 달리러 나가면 이상하게 평소 페이스가 버거운 날이 있다. 전날 훈련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잠도 잘 잤는데 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이럴 때 원인은 다리가 아니라 머리일 수 있다. 하루 종일 회의와 보고서에 시달린 뇌는 같은 달리기를 더 힘들게 느끼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를 쓴다'는 건 단순히 생각이 많은 상태가 아니라, 집중력과 참을성을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일을 뜻한다.


영국 뱅거대학교의 Marcora 연구팀은 2009년 이를 실험으로 보여 줬다. 참가자 16명은 한 번은 90분 동안 쉬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컴퓨터 과제(화면에 뜨는 글자 순서에 맞춰 빠르게 버튼을 누르는 과제)를 했고, 다른 날에는 같은 90분 동안 무난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다음 최대 파워의 80% 강도로 지칠 때까지 자전거를 탔다. 다큐를 본 날은 평균 754초를 버텼지만, 머리를 쓴 날은 640초 만에 멈췄다. 약 15% 빨리 지친 것이고, 16명 중 13명이 머리를 쓴 날 더 일찍 멈췄다.


흥미로운 것은 몸의 수치였다. 심박수,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량, 산소 섭취량, 호흡량은 두 조건에서 거의 같았다. 근육과 심폐는 똑같이 일하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느낌이었다. 머리를 쓴 날에는 같은 강도가 더 힘들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는 못 하겠다'는 지점에 더 빨리 도달했다. 의욕 점수에는 차이가 없었다. 의지가 약해진 게 아니라 같은 노력이 더 무겁게 느껴진 것이다.


달리기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MacMahon 연구팀(2014)은 경험 많은 러너 20명에게 실내 트랙 3,000m를 두 번 달리게 했다. 머리를 많이 쓰는 과제를 한 뒤에는 평균 12분 12초, 그렇지 않을 때는 11분 59초가 걸려 약 13초 느렸다. 이때도 심박수와 혈중 젖산 농도는 차이가 없었다. 영국 켄트대학교 연구팀(Pageaux 외, 2014)의 실험에서는 30분 동안 헷갈리는 색깔 단어 과제(빨간 글씨로 쓴 '파랑'을 보고 글자 색을 답하는 식)를 한 것만으로도 5km 트레드밀 기록이 23.1분에서 24.4분으로 늦어졌다. 이 실험에서도 심박수와 젖산은 같았고, 힘든 정도를 스스로 매긴 점수만 12.4에서 13.5로 올라갔다.


2017년 스포츠의학 저널(Sports Medicine)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은 관련 연구 11편을 모아 같은 결론을 냈다. 머리가 지치면 지구력 운동 기록이 떨어지고, 심박수나 젖산 같은 생리 지표보다 '힘들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이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도 같은 맥락에서 휴식의 질을 강조한다. 책은 집에 머물며 집안일을 하거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은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니며, 휴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 직장, 가족,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모두 훈련 부하를 감당하는 능력에 영향을 준다고 짚는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가 일에서 왔든 훈련에서 왔든 대체로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삶을 살고 있다면 삶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훈련 전략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명상 같은 이완 기법을 그 방법으로 소개한다.


일상에서는 이렇게 적용해 볼 수 있다.
- 머리를 많이 쓴 날 인터벌이나 템포런 페이스가 안 나와도 실망하지 않는다. 체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느낌이 무거워진 것일 수 있다.
- 중요한 고강도 훈련은 가능하면 머리가 덜 지친 날, 덜 지친 시간대에 둔다.
- 쉬는 날은 일정과 화면에서도 쉬는 날로 만든다. 밀린 업무나 집안일로 꽉 채운 날은 회복일로 치지 않는다.
- 대회 전날과 당일 아침에는 복잡한 업무나 긴 스마트폰 사용을 줄인다.
- 울트라 레이스에서는 길 찾기, 보급 계산, 페이스 판단도 머리를 쓰는 일이다. 보급 계획과 구간별 목표 시간처럼 미리 정할 수 있는 것은 출발 전에 정해 두면 레이스 중 판단할 거리가 줄어든다.


다만 이 실험들은 대부분 실험실에서 짧게 진행됐고 참가자도 10~20명 정도로 적다. 30분짜리 과제 뒤에는 선수와 일반인 모두 기록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2018)도 있어, 얼마나 오래, 얼마나 힘들게 머리를 써야 영향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산악 레이스에서 정확히 15%가 줄어든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도 '오늘 유난히 힘들다'고 느껴질 때 그 이유가 다리가 아니라 머리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 두면, 무리하게 페이스를 밀어붙이거나 괜히 자책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일이나 공부로 머리를 많이 쓴 날, 달리기는 어떻게 조절하시나요? 댓글로 경험을 나눠 주세요!


참고: Steve House·Kilian Jornet·Scott Johnston,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 / PubMed(Marcora 외,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2009), https://pubmed.ncbi.nlm.nih.gov/19131473/ / PubMed(MacMahon 외, Journal of Sport & Exercise Psychology 2014), https://pubmed.ncbi.nlm.nih.gov/25226606/ / PubMed(Pageaux 외,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2014), https://pubmed.ncbi.nlm.nih.gov/24531591/ / PubMed(Van Cutsem 외, Sports Medicine 2017), https://pubmed.ncbi.nlm.nih.gov/28044281/ / PMC(2018, 장시간 인지 과제 후 타임트라이얼 연구),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342897/

원문 : Steve House·Kilian Jornet·Scott Johnston,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 / PubMed(Marcora 외,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2009), https://pubmed.ncbi.nlm.nih.gov/19131473/ / PubMed(MacMahon 외, Journal of Sport & Exercise Psychology 2014), https://pubmed.ncbi.nlm.nih.gov/25226606/ / PubMed(Pageaux 외,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2014), https://pubmed.ncbi.nlm.nih.gov/24531591/ / PubMed(Van Cutsem 외, Sports Medicine 2017), https://pubmed.ncbi.nlm.nih.gov/28044281/ / PMC(2018, 장시간 인지 과제 후 타임트라이얼 연구),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342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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