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20분, 밤에 덜 잔 러너일수록 지구력이 더 좋아졌다
2026. 10. 16. 08:08 · 트레일러너들 팁

낮잠은 흔히 게으름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지구력 훈련을 하는 사람에게는 꽤 쓸모 있는 회복 도구다. 다만 누구에게나 같은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뱅고어 대학교 연구팀이 훈련된 남성 러너 11명을 실험한 결과, 오후 낮잠으로 지구력이 좋아진 사람은 평소 밤잠이 7시간에 못 미치는 러너들이었다.
실험은 하루에 두 번 달리는 구조였다. 아침에 최대산소섭취량(VO2max)의 75% 강도로 30분을 달리고, 저녁에 다시 와서 60% 강도로 20분을 달린 뒤 곧바로 90% 강도로 지칠 때까지 버텼다. 한 번은 저녁 운동 약 90분 전에 오후 낮잠을 자게 했고, 다른 한 번은 낮잠 없이 같은 과정을 밟았다. 두 조건의 순서는 무작위로 정했다.
참가자 모두 낮잠을 잤고, 실제로 잠든 시간은 평균 20분 안팎이었다. 그런데 전체 평균만 보면 차이가 거의 없었다. 지칠 때까지 버틴 시간이 낮잠을 잔 날 596초, 안 잔 날 589초였다. 이 숫자만 보면 낮잠은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별로 나눠 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낮잠 뒤 기록이 좋아진 러너들은 평소 밤잠이 평균 6.4시간이었고, 좋아지지 않은 러너들은 7.5시간이었다. 밤잠과 기록 변화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어서, 밤에 적게 자는 사람일수록 낮잠 뒤 기록이 더 많이 늘었다. 연구팀의 결론은 "밤에 7시간 미만으로 자는 러너에게는 짧은 오후 낮잠이 지구력을 높인다"였다.
기록이 좋아진 러너들은 같은 강도로 달릴 때 덜 힘들다고 느꼈다. 주관적 운동 강도(RPE)가 낮아진 것이다. 근육이 갑자기 강해졌다기보다, 뇌가 느끼는 피로감이 줄어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잠이 모자라면 같은 페이스도 더 힘들게 느껴지는데, 낮잠이 그 손실을 일부 메워 준 셈이다.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도 회복을 높이는 방법을 중요도 순으로 꼽으면서 식단 다음으로 수면을 든다. 깊은 수면 중에 성장호르몬 분비가 늘어 훈련으로 생긴 손상을 회복하고 더 높은 훈련 부하에 적응하도록 돕는다는 설명이다. 책은 밤잠을 설쳤더라도 낮에 15분만 깊이 자면 놀라울 만큼 상쾌해질 수 있다고 적는다. 또 집안일을 하거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은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니며, 휴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낮잠을 훈련에 활용하려면 몇 가지를 지키는 게 좋다.
- 시간대: 졸음이 자연스럽게 몰리는 오후 1~4시 사이가 좋다. 너무 늦게 자면 밤잠을 방해할 수 있다.
- 길이: 뱅고어 연구팀은 40분을 넘기지 말고, 20분만 자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선수 대상 리뷰 논문은 20~90분 범위를 권한다.
- 깨자마자 뛰지 않기: 낮잠 직후의 멍한 상태(수면 관성)는 보통 15~30분이면 풀린다. 리뷰 논문은 훈련이나 경기 전 최소 30분을 두라고 하고, 뱅고어 연구팀은 운동 90분 전에는 깨어나라고 권했다.
- 밤잠의 대체재가 아니다: 낮잠은 부족한 밤잠을 메우는 보충 수단이다.
낮잠 길이에 상한을 두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낮잠이 25~30분을 넘어가면 깊은 잠(서파수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는데, 특히 잠이 부족한 날일수록 그렇다. 깊은 잠 도중에 깨면 멍한 상태가 더 오래 이어지고, 낮잠이 길어질수록 그날 밤 잠드는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잠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는 90분 낮잠이 20분보다 회복 효과가 더 컸다는 연구도 있어서, 저녁에 바로 훈련이 없다면 조금 길게 자는 것도 방법이다.
한계도 분명하다. 참가자는 11명뿐이었고 모두 남성이었으며, 실험실 트레드밀에서 10분 남짓 버티는 고강도 테스트였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트레일 레이스나 여성 러너에게도 같은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 충분히 잔 러너에게는 낮잠이 기록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잠이 충분하다면 굳이 낮잠을 챙길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울트라 레이스 도중의 낮잠은 또 다른 이야기다. 선수 대상 리뷰 논문에 따르면 한 울트라마라톤 연구에서는 참가자의 70%가 레이스 도중 잠을 잤고, 평균 수면 시간은 23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두 연구에서는 레이스 중 낮잠을 잔 러너가 그렇지 않은 러너보다 늦게 들어왔다. 느린 러너일수록 레이스 시간이 길어 잠이 더 필요했을 수 있으니, 낮잠 자체가 기록을 늦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레이스 중 수면은 아직 결론이 엇갈리는 영역이고, 이 글에서 다룬 훈련일 오후 낮잠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트레일러너에게 이 결과가 쓸모 있는 순간은 의외로 많다. 대회 전날 긴장해서 잠을 설쳤을 때, 새벽 출발 대회나 장거리 이동으로 밤잠이 짧아졌을 때, 오전과 저녁에 두 번 훈련하는 날이 그렇다. 이런 날 오후 20~30분 낮잠은 가장 싸고 간단한 회복 수단이다.
정리하면, 낮잠의 효과는 전날 밤잠에 달려 있다. 7시간을 못 잔 날이라면 오후에 20분 눈을 붙이는 것만으로 저녁 훈련이 덜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다만 깨고 나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달리자.
참고: Steve House·Kilian Jornet·Scott Johnston,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 / PubMed(Blanchfield 외, European Journal of Sport Science 2018), https://pubmed.ncbi.nlm.nih.gov/29851569/ / Bangor University, https://www.bangor.ac.uk/human-sciences/news/afternoon-napping-improves-runners-endurance-performance-paper-achieves-4th-place-in-ejss-best-paper-awards-40881 / PMC(Lastella 외, Nature and Science of Sleep 2021),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238550
원문 : Steve House·Kilian Jornet·Scott Johnston,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 / PubMed(Blanchfield 외, European Journal of Sport Science 2018), https://pubmed.ncbi.nlm.nih.gov/29851569/ / Bangor University, https://www.bangor.ac.uk/human-sciences/news/afternoon-napping-improves-runners-endurance-performance-paper-achieves-4th-place-in-ejss-best-paper-awards-40881 / PMC(Lastella 외, Nature and Science of Sleep 2021),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238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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