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 58%를 넘으면, 오르막은 뛰기보다 걷는 게 더 효율적인 이유
2026. 10. 13. 17:14 · 트레일러너들 팁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면 러너들은 본능적으로 "그래도 뛰어야지"라는 압박을 느낀다. 하지만 경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체력이 좋은 선수조차 걷는 쪽이 에너지를 덜 쓰는 더 똑똑한 선택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오르막을 '버티는 구간'이 아니라 '선택의 구간'으로 바라보면, 같은 체력으로도 완주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팀(Ortiz, Giovanelli, Kram, 2017)은 30도 경사(수평 거리 10m당 약 5.8m를 오르는, 경사도 약 58%에 해당하는) 트레드밀에서 달리기와 걷기의 산소소비량을 비교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속도가 초속 약 0.9m(시속 약 3.2km, 1km당 약 18분 페이스)보다 느릴 때는 거의 모든 참가자에게서 걷기가 달리기보다 산소소비량이 적었다. 달리기가 더 효율적이었던 경우는 오직 최상위권 선수들이 그보다 빠른 속도로 오를 때뿐이었다. 즉 "체력이 좋으니까 뛰어야 유리하다"는 직관이 급경사에서는 대부분 틀린 셈이다.
2015년 같은 연구팀의 또 다른 실험(Giovanelli 등)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수직 상승 속도를 동일하게 맞췄을 때, 대부분의 경사·속도 구간에서 걷기가 더 경제적이었다. 예외는 경사 10도(약 18%)에서 시속 약 7.7km(1km당 7분 46초 페이스)로 오를 때뿐이었는데, 이 조건에서는 오히려 달리기가 더 효율적이었다. 즉 경사가 완만할수록, 그리고 속도가 빠를수록 저울은 달리기 쪽으로 기울고,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걷기 쪽으로 기운다. 두 연구를 겹쳐 보면 경계선은 고정된 숫자 하나가 아니라, 경사와 속도가 함께 만드는 곡선에 가깝다.
그렇다면 실제 트레일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는 경사도가 20%를 넘어가는 지점부터 대부분의 사람이 트레일을 "가파르다"고 부르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언덕 반복 운동 가이드에서도 경사도 20~50% 구간을 달리거나 하이킹하는 구간으로 함께 묶어 다루는데, 이는 그 정도 경사에서는 이미 달리기와 파워하이킹(power hiking)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단순한 기준은, 숨이 아니라 다리(허벅지)가 먼저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이 곧 걷기로 전환할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전환한 뒤에는 보폭을 짧게 줄이고 양손을 허벅지에 얹어 상체 추진력을 보태면, 같은 심박수로도 더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기 쉬워진다.
거리가 길어질수록 이 선택의 무게도 커진다. 5~10km의 짧은 트레일 레이스라면 급경사에서 몇십 초를 더 뛰어 벌어도 큰 차이가 안 날 수 있지만, 수직 상승고도가 수천 미터에 달하는 울트라 트레일에서는 매 오르막마다 불필요하게 써 버린 에너지가 후반 구간의 다리 힘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래서 경험 많은 울트라 러너일수록 초반 급경사에서 오히려 더 일찍, 더 자주 걷기로 전환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이 연구들은 모두 통제된 트레드밀 실험이라는 한계가 있다. 실제 트레일은 노면이 고르지 않고 바위·뿌리·계단형 지형이 섞여 있어, 트레드밀보다 더 낮은 경사에서도 걷기가 유리해질 수 있다. 또한 선수 개개인의 근력, 체중, 경사 적응 훈련 정도에 따라 전환 지점은 꽤 달라진다. 엘리트 선수일수록 더 가파른 경사·더 빠른 속도까지 달리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두 연구에서 공통으로 확인된 부분이다. 국내 트레일 대회 코스 중에도 급경사 구간에서는 상위권 선수들조차 걷기와 달리기를 섞어 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인 셈이다.
킬리안 조르넷 같은 톱클래스 선수들도 극단적으로 가파른 구간에서는 파워하이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Training for the Uphill Athlete》에서는 이를 훈련 강도 3존에서 다리에 타는 듯한 느낌을 유지하는 근지구력 운동으로도 적극 활용한다고 소개한다. 즉 걷기는 포기가 아니라, 경사가 바뀔 때마다 덜 지치면서 더 빠른 쪽을 고르는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결국 오르막에서 중요한 건 "뛰느냐 걷느냐"가 아니라, 그 경사와 속도에서 어느 쪽이 덜 지치면서 더 빨리 오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다음 가파른 구간을 만나면, 억지로 뛰기보다 다리의 신호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