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중 먹은 진통제가 신장 손상 위험을 높이는 이유
2026. 10. 14. 08:05 · 트레일러너들 팁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 후반, 무릎이나 발목이 욱신거리기 시작하면 배낭 속 진통제부터 꺼내는 러너가 적지 않다. 실제로 울트라마라톤 참가자의 35~75%가 경기 중 이부프로펜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를 먹는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데 이 습관이 레이스 중 신장 손상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무작위 대조 실험으로 확인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그랜트 립먼(Grant Lipman) 연구팀은 고비·아타카마·에콰도르·스리랑카에서 열린 250km 다단계 사막 울트라마라톤의 80km 구간에서 참가자 89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4시간마다 이부프로펜 400mg을, 다른 그룹은 똑같이 생긴 가짜 약을 먹었고, 누가 어떤 약을 먹는지는 선수도 연구진도 몰랐다. 이부프로펜 그룹이 레이스 동안 먹은 양은 평균 1,200mg, 흔히 파는 200mg 알약으로 6알 정도다.
결승선에서 혈중 크레아티닌을 재 보니 급성 신장 손상(AKI)은 이부프로펜 그룹의 52%, 가짜 약 그룹의 34%에서 나타났다. 18%포인트 차이로, 진통제를 먹은 5.5명당 1명꼴로 신장 손상이 추가로 생긴 셈이다. 손상의 정도도 이부프로펜 그룹 쪽이 더 심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장시간 달리는 동안 신장은 이미 탈수, 근육 손상에서 나온 미오글로빈, 교감신경 항진이 겹친 부담을 받고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 NSAID가 신장으로 가는 혈류를 줄이는 요인으로 더해진다고 설명한다. 같은 연구에서 체중이 더 많이 줄어든(탈수가 심한) 러너일수록 신장 손상이 더 잦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프랑스 낭시대 연구팀이 120km, 누적 상승 5,700m의 '인퍼널 트레일' 완주자 중 NSAID를 전혀 먹지 않은 24명을 조사했더니, 급성 신장 손상 비율은 계산 방식에 따라 0~12.5%에 그쳤다. 연구진은 수분을 잘 챙기고 NSAID를 쓰지 않는 조건이라면 울트라 자체가 신장에 큰 손상을 준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립먼 연구는 표본이 크지 않고 중도 탈락자가 많아, 통계적으로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유의성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막의 더운 환경이었다는 점도, 인퍼널 트레일 연구가 쌀쌀하고 비 오는 날 치러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레이스 뒤 생긴 신장 손상은 대부분 저절로 회복되지만, 드물게 급성 신부전으로 입원까지 이어진 사례도 보고돼 있다.
정리하면, 레이스 도중 진통제는 습관처럼 먹을 약이 아니다. 립먼 박사는 꼭 필요하다면 아세트아미노펜을 대안으로 고려하라고 조언하지만, 이 역시 정해진 용량을 지켜야 하고 지병이나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미리 의사·약사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통증을 약으로 덮기보다 수분을 꾸준히 챙기고, 몸이 보내는 경고에 페이스로 답하는 편이 결승선까지 가는 더 안전한 길이다.
참고: PubMed(Lipman 외, Emergency Medicine Journal 2017), https://pubmed.ncbi.nlm.nih.gov/28679502 / Stanford Medicine, https://med.stanford.edu/news/all-news/2017/07/pain-reliever-linked-to-kidney-injury-in-endurance-runners.html / Frontiers in Sports and Active Living(Poussel 외, 2020),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sports-and-active-living/articles/10.3389/fspor.2019.00071/full
원문 : PubMed(Lipman 외, Emergency Medicine Journal 2017), https://pubmed.ncbi.nlm.nih.gov/28679502 / Stanford Medicine, https://med.stanford.edu/news/all-news/2017/07/pain-reliever-linked-to-kidney-injury-in-endurance-runners.html / Frontiers in Sports and Active Living(Poussel 외, 2020),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sports-and-active-living/articles/10.3389/fspor.2019.00071/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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